

1993년, 비록 삼성 모바일은 여전히 실적이 저조했지만, 텔레비전 등의 다른 제품들은 국내에서 확실히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LA 출장 중이던 건희에게 깜짝 놀랄 일이 생기게 됩니다.

삼성의 텔레비전이 전자 제품 매장 구석에 처박혀서 먼지가 잔뜩 쌓인 채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1993년 6월 4일에는 당시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으로 있었던 일본인, 후쿠다 다미오가 사표를 제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후쿠다 다미오는 1989년에 건희가 직접 스카우트한 인물이었는데, 그만 두기 전에 지난 4년간 삼성에 있으면서 느낀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경영과 디자인]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이것을 일명 후쿠다 보고서라고도 부릅니다.

여기에는 삼성 임직원들이 공업디자인과 상품 디자인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디자인 영역의 문제를 다룬 보고서였습니다.

당시 도쿄에 있었던 건희는 이 보고서를 가지고 임원들과 밤샘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다음 날, 건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갈 일이 있어 공항으로 향하게 되는데, 삼성 사내방송팀 SBC에서 제작한 ‘고발 프로그램’ 테이프 하나가 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런데, 영상을 본 건희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삼성전자의 세탁기 생산라인을 촬영한 30분짜리 영상이었는데, 플라스틱 뚜껑이 불량으로 생산되어 뚜껑이 잘 닫히지 않자 칼로 접촉면을 깎아내어 조립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건희는 잔뜩 화가 나서는 서울의 비서실에 전화를 걸어 200여 명의 삼성 핵심 경영진을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했습니다.

그렇게 19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에서 비상경영 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이날 건희는 회의 자리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농담이 아니야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봐 “

이것을 프랑크푸르트 선언, 또는 신경영 선언이라고 부릅니다.


이후 그는 실제로 불량이 생긴 생산라인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생산을 중단시키는 ‘라인 스톱제’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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