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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애니콜의 탄생 [삼성 #22]

by 세상의모든지식 2022.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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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 회의 당시 건희는 삼성전자C&C 상무였던 오정환에게 모토로라가 90%를 점유하고 있는 국내 시장에서 삼성이 3년 내에 50%를 넘을 수 있는지 공개적으로 물었습니다.

그때 정환은 차마 못 한다고 말할 수 없었기에 “해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때 정환의 주도 하에 모토로라를 따라잡기 위한 삼성의 새로운 모바일 브랜드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브랜드의 이름을 짓기 위해 내부적으로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정환이 낸 아이디어가 선정되었던 겁니다. 그렇게 결정된 이름은 애니콜(Anycall)이 아닌 애니텔(Anytell),

사실 정환은 신문을 보다가 ‘애니깽’이란 영화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잘 된다’는 의미로 애니텔과 애니콜이 모두 떠올랐다고 합니다. 

정환은 애니콜이 좀 더 마음에 들긴 했지만, 콜걸(Call girl)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반대에 부딪혀 애니텔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앤텔(Antel)이란 유사상표가 이미 존재한다는 이유로 애니텔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정환은 애니콜로 강하게 밀어 부쳤고 결국 새로운 브랜드의 명칭은 애니콜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1994년 10월, 애니콜 최초의 제품, 애니콜 SH-770이 출시됩니다.

무게 187g, 사용시간 최대 32시간, 가격은 95만 원으로 나온 SH-770.

사실 삼성은 어떻게 하면 모토로라와 차별화할 수 있을까 연구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휴대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통화 성공률(통화품질)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삼성은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을 내세우며 한국 지형에서도 잘 터진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1994년 삼성 애니콜 광고”

애니콜의 등장이후 국내 휴대전화 점유율이 30%까지 높아지긴 했지만, 실제로 삼성 휴대폰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불만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신경영 선언을 하며 계속해서 품질관리를 강조해온 건희는 휴대폰의 불량률이 11.8%에 달한다는 보고까지 받게 됩니다.

“돈을 받고 불량품을 파는 것은 고객들을 기만하는 것이야!” 

그리고 1995년 3월 9일, 건희의 지시에 따라 삼성전자의 구미 사업장에서  휴대폰과 무선전화기, 팩시밀리 등 시중에 출시된 삼성 제품 15만 대를 모두 회수해서 태워버린 일명 애니콜 화형식이 거행됩니다.

자신들이 만든 제품이 불타 없어지는 것을 보며 삼성 직원들은 여러 가지 마음이 교차했다고 합니다. 당시 불에 탄 제품은 500억 원어치 상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애니콜 화형식을 한 지 4개월 만에 애니콜의 판매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신규 고객 개통수 1위를 차지하는 동시에  국내 휴대폰 점유율 50%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렇게 국내 시장에서 모토로라를 이긴 삼성은 점차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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