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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시진핑의 오지생활과 공산당 입당 [시진핑 #4]

by 세상의모든지식 2022.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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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중학교를 졸업한 16살의 시진핑. 하지만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지식청년은 농촌에 내려가 가난한 농민의 교육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마오쩌둥의 상산샤샹 방침에 따라 당시 1,600만 명의 학생들이 농촌으로 내려가 강제 노동에 투입되게 된 것입니다. 

시진핑 역시 산시성의 량자허라는 오지에 배치돼 3평 남짓한 작은 토굴에서 살게 됐습니다. 하지만 농촌 생활도 그리 안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농촌 주민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기술은 없으면서 숙식까지 제공해 줘야 하는 학생들이 부담됐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시골로 내려간 많은 학생들이 주민들에게 매를 맞고 괴롭힘을 당하고 심지어 살해를 당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시진핑 역시 “우리는 몇 달 동안 고기를 먹지 못했다. 다음에 고기를 보았을 때 친구와 나는 그냥 잘라서 생으로 먹었다”고 할 정도로 큰 고생을 했고, 결국 3개월 만에 베이징으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모와 이모부의 설득으로 다시 농촌으로 돌아온 그는 심기일전하여 그때부터 농촌 사람들과 잘 지내며 7년간의 하방 생활을 성공적으로 보내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던 1974년, 21살이 된 시진핑은 그토록 원하던 공산당에 입당을 허가받게 됩니다. 중국 공산당은 일종의 엘리트 집단으로 시진핑은 입당을 신청한 지 11번째 만에, 문화대혁명이 완화된 후에야 드디어 입당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공산당 최하층 관리인 량자허 대대 지부의 서기가 된 시진핑. 시진핑은 작은 시골의 서기로 정치적인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1975년, 문화대혁명이 끝날 즈음 공농병 청강생으로 선발이 돼 중국의 명문 칭화대 화학과에 입학할 수 있게 됩니다. 이로써 시진핑은 7년간의 오지 생활을 마치고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나고 1979년에 덩샤오핑이 실권을 장악하면서 16년간 야인으로 있던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은 다시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하게 됩니다. 

그즈음 대학을 졸업한 시진핑 역시 아버지가 힘을 써준 덕분에 겅뱌오 부총리의 비서로 일하게 되며 탄탄대로를 달리게 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시진핑은 1982년에 돌연 사표를 낸 뒤 “기층조직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며 지방행을 선택해버렸습니다.

이후 25년 동안 지방만을 전전하며 샤먼시 부시장, 푸저우시 서기, 푸젠성 부서기, 푸젠성장 등 자신만의 정치적 자산을 쌓아나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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