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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이 대구에 세워진 이유 [삼성 #6]

by 세상의모든지식 202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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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이 대구에 세워진 이유 [삼성 #6]

트럭을 구해 대구로 피난한 병철

병철의 가족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원들과 함께 트럭을 구해서 대구로 피난했습니다. 

벌써 전쟁 때문에 사업이 두 번이나 망한 병철…

조선양조로 향한 병철

그는 대구에 도착해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조선양조로 향했습니다.

조선양조가 비축한 3억원

그런데, 조선양조를 운영하던 경영진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사장님, 양조장 운영이 잘 되어 3억圓 정도의 비축이 있습니다.

기회를 얻게 된 병철

 이 돈으로 하시고 싶은 사업 다시 시작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병철은 또 한 번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삼성물산주식회사 설립

그는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으로 내려가 1951년 1월 10일, 삼성물산 주식회사를 새롭게 설립했습니다.

홍콩 미수금 회수

게다가 삼성물산공사 당시 홍콩에서 받지 못했던 3만 달러를 회수했는데, 당시 환율이 달러당 2,500圓이었기 때문에 7,500만圓의 추가 자금이 생겼습니다.

전쟁 중에 여유있게 사업 시작

전쟁 중이긴 했지만, 삼성물산 주식회사는 꽤 여유 있는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순이익 20억원 달성

주로 설탕과 비료를 수입하여 부산 국제시장 도매상에게 판매했고 1년 만에 60억圓의 매출을 달성, 순이익은 20억圓 달하게 됩니다.

악성 인플레이션에 의한 수치

그런데, 병철은 이것이 큰 이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수치상으로는 분명 큰 금액이었지만, 당시 전쟁의 영향으로 통화 남발과 물가 상승이 되풀이되는 악성 인플레이션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물가 상승

실제로 1951년 당시 서울 도매 물가를 기준으로 무려 531%의 물가 상승이 있었다고 합니다.   

수출의 필요성을 느낀 병철

이때 병철은 인플레이션의 무서움을 깨닫게 되었고 소비 물자를 수입에 의존하기보다 원료를 수입하여 국내에서 제조한 뒤 다시 수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한국전쟁 휴전협정

그러던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은 휴전협정으로 중단되었습니다.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그리고 머지않아 병철은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이라는 엄청난 기업을 세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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