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퇴의 늪, 지수 보통학교에서 와세다 대학까지 [삼성 #2]
병철이 진주로 온 이유는 새로 세워진 신식학교를 다니기 위해서였습니다.
1921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 지수 보통학교가 세워지는데, 이는 지금의 지수초등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허준이라는 인물이 인재 양성을 위해 땅을 기증하면서 세워지게 되는데, 참고로 허준은 GS를 창립한 허만정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렇게 1922년 3월, 짧게 이발한 병철은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운 덕분에 진주 지수 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같은 반 친구 중에는 구인회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훗날 락희화학공업사, 지금의 LG를 창립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오랫동안 학교를 같이 다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1922년 9월, 병철이 외갓집이 있던 경성, 지금의 서울로 올라와 수송 보통학교 3학년으로 다시 편입했기 때문입니다.
경상도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온 그는 처음에는 사투리 때문에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아, 50명 중 35등~40등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
예외적으로 산수 과목만은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병철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를 졸업 때까지 끝까지 다니지를 못했습니다.
경성 수송 보통학교를 다니던 그는 보통학교 5학년, 6학년 과정을 단기간에 속성으로 배울 수 있었던
중동 중학 속성과에 다시 편입해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수료한 뒤, 중동중학교 1학년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제법 우수한 성적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1926년 12월 5일(음력), 17살이 된 병철은 중동중학교 3학년 재학 중에 부모님이 정해 준 대로 박두을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 후 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칠 무렵 병철은 갑자기 학업을 마치지 않고 일본에 유학을 가서 제대로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이 결심을 아버지에게 전하게 되는데,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꾸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못해 유학경비가 없었던 병철은 자신의 형, 이병각의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함안의 대지주의 아들이었던 형의 친구는 병철에게 선뜻 500원을 내어줬습니다. 당시 쌀 한 가마가 13원 정도였다고 하니, 500원은 정말 엄청난 돈이었는데,
그 돈을 선뜻 내준 형의 친구는 훗날, 효성을 창립한 조홍제였습니다.
1929년 10월, 3년간의 유학 준비 끝에 도쿄에 있는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정말 처음으로 학업에 열심히 정진했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이 날 때마다 여러 공장을 찾아다니며 일본 공업에 대한 것을 최대한 배우려 애썼습니다.
그런데, 그런 병철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조금만 공부해도 쉽게 지치고 힘이 쭉 빠지는 이상한 병에 걸렸던 것입니다.
일본 내에서 어떻게든 치료하려 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결국 1931년, 병철은 회복을 위해 일본 유학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병철은 자서전인 호암자전을 통해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와세다대학을 중퇴했다. 지수 보통학교, 수송 보통학교, 중동학교로 이어지는 네 번째 중퇴로 나에게는 졸업증서라는 것이 한 장도 없다.”
하지만, 그는 짧은 시간 동안 일본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당시 도쿄가 세계 중심지의 하나라는데 그곳에서는 세계가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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