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대지주의 아들, 금수저 이병철 [삼성 #1]

1910년, 경상남도 의령에는 아주 넓은 농토를 소유한 대지주, 이찬우와 그의 아내 권재림이 2남 1녀의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이찬우의 가족이 살던 이 집은 찬우의 할아버지 이홍석이 지은 집이었는데, 무려 570평의 넓은 땅에 안채, 사랑채, 대문채 등 멋들어진 기와집으로 지어진 대저택이었습니다.

그러던 1910년 2월 12일(음력), 이들 부부 사이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납니다.

이 아이가 바로 훗날, 대한민국 경영계에 큰 획을 그으며 삼성그룹의 초대 회장이 되는 호암 이병철입니다.


참고로 병철이 태어난 이 집은 풍수지리적으로 배산임수에 해당하는 명당 중 명당일 뿐 아니라, 부자의 기가 흐른다고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부자 기 받기’를 하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병철이 태어난 1910년 8월 29일, 일본제국에 의해 국권이 상실된 경술국치가 일어납니다.


시대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병철의 아버지, 찬우는 아주 넓은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엄청난 양의 쌀을 수확하는 천석지기였기 때문에 병철은 어려서부터 아주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병철은 6살때부터 할아버지가 세운 문산 정이라는 서당을 다녔습니다. 머리를 자르지 않고 댕기를 땋은 전형적인 학도의 모습으로 천자문과 사서삼경.. 그러니까 사서- 논어, 맹자, 대학, 중용과 삼경-시경, 상서, 주역을 배웠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논어를 가장 즐겨 읽으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병철은 어릴 적에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배우는 기간이 훨씬 더 오래 걸렸습니다.


그러다 1921년, 12살이 된 병철은 고향인 의령을 떠나 진주로 시집간 둘째 누나 이분시의 집에 가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둘째 누나, 분시는 병철을 어디론가 데리고 갔습니다. 그 곳은 다름 아닌 이발소였습니다.

그렇게 병철은 12년간 길렀던 댕기머리를 순식간에 댕강! 잘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날을 자신의 ‘개화의 날’이라고 회상했다고 합니다.
'브랜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도박하다가 정신차리고 사업에 성공했지만 땅값 폭락으로 위기에 처한 병철 [삼성 #3] (0) | 2022.02.03 |
|---|---|
| 중퇴의 늪, 지수 보통학교에서 와세다 대학까지 [삼성 #2] (0) | 2022.02.03 |
| 서비스 규제와 라이벌의 등장 [넷플릭스 #5] (0) | 2022.01.28 |
|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 [넷플릭스 #4] (0) | 2022.01.28 |
| OTT(over the-top) 사업을 시작한 넷플릭스 [넷플릭스 #3] (0) | 2022.01.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