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브랜드

도박하다가 정신차리고 사업에 성공했지만 땅값 폭락으로 위기에 처한 병철 [삼성 #3]

by 세상의모든지식 2022. 2. 3.
728x90
반응형

도박하다가 정신차리고 사업에 성공했지만 땅값 폭락으로 위기에 처한 병철 [삼성 #3]

각기병을 앓던 병철

병철이 일본에서 앓았던 병의 정체는 티아민(비타민 B1) 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각기병이었습니다.

쉬면서 건강을 되찾은 병철

다행히 고향으로 돌아온 병철은 쉬면서 곧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학업에서 손을 떼자, 좋지 않은 길로 빠지게 됩니다.

골패라는 도박에 빠진 병철

친구들과 함께 골패라는 도박에 빠졌는데, 골패는 숫자를 점으로 표기한 패를 가지고 하는 게임이었습니다.  

자녀가 셋이나 있었지만 노름을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병철

그에게는 1928년에 낳은 장녀 이인희, 1931년에 낳은 장남 이맹희, 그리고 1933년에 낳은 차남 이창희까지 3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병철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밤새 골패 노름을 하며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1934년 어느 날, 병철은 여느 때와 같이 하루 종일 골패 노름을 하다가 늦은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C:\Users\ksjea\Desktop\광일 테스트\티스토리\브랜드\삼성\삼성 이병철\이병철_03

그날따라 밝은 달빛이 창 너머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달빛에 비친 쌔근쌔근 잠든 세 아이가 병철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뜻을 세워야 해!’ 

그날 밤, 병철은 잠을 자려고 했지만 생각이 많아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병철

생각에 생각을 더한 끝에 그는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사업 자금을 건내 받은 병철

며칠 뒤, 병철은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이 사업을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때, 병철의 아버지 찬우는 ‘스스로 납득이 가는 일이라면 결단을 내려보는 것이 좋다’며 300석의 쌀을 추수할 수 있는 재산을 사업 자금으로 내어주었습니다.

사업 자금이 생긴 병철은 부산, 대구뿐 아니라 경성까지 직접 돌아다니며 사업 아이템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마산에서 일본으로 수출되는 쌀

그러다 경남 일대에서 수확한 쌀을 항구도시였던 마산에서 도정하여 일본으로 수출한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정미소

그 양은 무려 연간 수백만 석에 이르렀고 정미소가 부족해서 도정을 하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마산에 협동 정미소를 세운 병철

그렇게 1936년 3월,  병철은 도정 사업이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하며 친구인 정현용, 박정원과 함께 각자 1만 원씩 출자하여 3만 원으로 마산에 협동 정미소를 세웠습니다.

보유하고 있던 트럭 10대를 통해 운수업도 시작한 병철

당시 마산에 물자 운송수단이 많지 않아 운송비가 비쌌는데, 병철은 이 점을 역이용해서 트럭 10대를 보유하고 있던 일출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여 개인적으로 운수업도 시작했습니다.              

병철의 첫 사업들은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세 번째 사업을 준비하게 됩니다. 산수에 강했던 그는 쌀 값을 분석했는데, 당시는 일제의 농민 수탈정책 때문에 쌀 생산량의 절반을 소작료로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에 은행 대출을 더해 다시 농토를 사들여 쌀을 수확하더라도 소작료를 내고 은행 이자를 갚고도 약간의 이익이 남았던 겁니다.

조선식산은행 마산점

병철은 계획대로 조선식산은행 마산점에서 대출을 받아 김해평야 전체를 사들일 기세로 무섭게 토지를 늘려갔습니다. 

덕분에 그는 1년 만에 2백만 평의 대지주가 되어 연간 일 만석의 쌀을 수확하며 사업을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중일전쟁

그러던 1937년 7월 7일,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략하며 중일전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땅값 폭락

전쟁이 시작되자, 병철이 돈을 빌렸던 식산은행은 대출을 중단했고 설상가상으로 땅값은 완전히 폭락했습니다.

파산한 병철

결국 병철은 완전히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