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시작, 삼성상회 [삼성 #4]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가 하루아침에 쫄딱 망해버린 이병철 하지만, 그에겐 든든한 지원군인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찬우는 병철에게 30,000원이라는 거금을 다시 내어줬습니다. 당시 한 달 월급이 15원 정도였기 때문에 3만 원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습니다.



병철은 다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부산, 경성, 평양, 신의주, 원산, 흥남을 거쳐 중국의 베이징, 칭다오, 상하이까지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하며 어떤 사업을 하는 것이 좋을지 물색했습니다.

그러다 중국에서는 엄청난 규모로 상거래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2개월간의 여행 끝에 그는 청과물과 건어물 등이 무역에 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938년 3월 1일, 병철은 아버지에게 받은 3만 원을 가지고 대구로 가서 250평 규모의 점포를 사들여서 청과물과 건어물을 무역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 3과 밝고 높고 영원히 깨끗이 빛나는 별을 뜻하는 성을 합쳐 가게 이름을 삼성상회라고 지었습니다.


삼성상회는 대구지역에서 생산되는 청과물과 포항 지역에서 생산되는 건어물을 들여와 중국 대륙으로 수출하는 무역을 했습니다.



병철은 예전에 정미소를 하다 폭망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무역에만 의존하는 것이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하고는 제분기와 제면기를 설치하여 제조업도 함께 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면 제품이 별표 국수입니다. 삼성상회는 꽤 안정적으로 운영되며 성장해갔습니다.

1939년, 사업 자금에 여유가 생기자 병철은 또 다른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바로 술을 만드는 양조업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인이 경영하다가 매물로 내놓은 ‘조선양조’라는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한편,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당연히 경제 침체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대박을 치던 물품이 있었으니 바로 술이었습니다. 경영난은 무슨, 오히려 재고가 없어서 걱정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미국 하와이를 폭격한 진주만 공격이 일어납니다. 이로 인해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는데, 이 시기부터 삼성상회든 조선양조든 생산량의 95%를 일본의 군수물자로 강제 납품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1942년 1월 9일, 병철과 두을 부부의 7번째 자녀가 태어납니다. 이 아이가 바로 훗날 삼성그룹 2대 회장이 되는 이건희였습니다.

그러던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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