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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의 새로운 회사 투자, 삼성물산 그리고 전쟁 [삼성 #5]

by 세상의모든지식 202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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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의 새로운 회사 투자, 삼성물산 그리고 전쟁 [삼성 #5]

삼성상회와 조선양조를 운영한 병철

광복 후, 병철은 계속해서 삼성상회와 조선양조를 운영해 갔습니다.

조선양조에서 팔기 시작한 월계관 청주

특히 조선양조에서 청주를 만들어 월계관이라는 상표를 붙여 팔기 시작했고 전국적으로 불티나게 팔렸다고 합니다.

암담한 국내 경제 상황으로 인해서 국제무역을 결심한 병철

그런데, 사업은 점차 확장했지만, 병철의 마음 한 켠에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 국내 경제 상황은 정말 암담한 수준이었는데, 병철이 판단하기에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자가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국제무역을 하는 것이란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위험부담을 안고 시작한 국제 무역

분명 위험부담은 굉장히 컸지만 병철은 그동안 벌어들인 자금으로 국제 무역을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친구 이순근에게 맡긴 조선양조 / 가족과 함께 서울상경

그리고는 삼성상회와 조선양조의 경영을 과감하게 친구였던 이순근에게 모두 맡기고 1947년 5월,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게 됩니다.

삼성물산공사 설립

그리고 1948년 11월, 종로 2가에 100여 평 규모의 2층 건물을 빌려서 삼성물산 공사를 설립하여 마카오와 홍콩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국제 무역을 시작했습니다.

출자

삼성물산 공사를 설립할 당시 투자자 중에는  앞서 언급되었던 형의 친구 조홍제가 있었습니다. 병철이 쓴 자서전, 호암자전에 따르면, 자신이 75%를 출자했고 나머지 투자자들이 25%를 출자했다고 합니다.

조홍제의 회고록

그런데, 조홍제의 회고록, 나의 회고에는 자신이 1,000만圓을 투자하고 병철이 700만圓을 투자하여 총 자본금 1,700만圓으로 삼성물산 공사를 설립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원'의 가치

여기서 한자로 표기된 圓(원)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원’의 1000분의 1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분 갈등

아무튼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지분 갈등으로 인해 훗날 이병철과 조홍제는 갈라서게 됩니다.

돈독

이 이야기는 이후에 다시 살펴보도록 하고, 어쨌든 설립 당시, 두 사람의 관계는 친형제와 같이 아주 돈독했습니다.

회사의 복지

한편, 회사 내부적으로는 사원이라면 누구나 회사에 투자를 할 수 있었고 투자한 만큼의 정당한 배당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안정적으로 흘러간 사업

삼성물산공사는 듣보잡 무역회사로 시작하긴 했지만, 아주 안정적으로 사업을 키워갔습니다.

잘나가던 무역회사

그렇게 1949년에는 전택보의 천우사, 김인형의 동아상사, 김용주의 대한물산, 박흥식의 화신 무역 등 그 당시 잘나가던 대무 역 회사들에 이어 무역업계에서 거래액 7위 기록을 달성합니다.

1등 무역회사가 된 삼성물산

그리고 그로부터 6개월 뒤에는 그 모두를 따라잡으며 1등 무역회사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일본 경제시찰단에 선발된 15명

덕분에 병철은 전택보, 설경동 등과 함께 일본 경제시찰단 15명에 선발되어 한국 대표로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그러던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전쟁 때문에 망한 사업

전쟁은 삼성물산공사가 그동안 이뤄놓은 모든 것을 무너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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