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의 탄생 [삼성 #9]

1956년, 이승만 정부는 공매 불하를 통해 은행의 민영화를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원래는 정부 소유의 은행을 민영화하여 금융자율화를 하고자 했으나 5번이나 유찰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정부는 불하조건을 조정한 뒤, 재벌들에게 은행주를 사달라고 요청하게 되는데 이때 천광사(현 삼호그룹)가 저축은행을, 곰표로 유명한 대한제분이 상업은행을 개풍 그룹이 서울은행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삼성은 흥업은행 지분의 83%, 조흥은행 지분의 55% 등 4개의 시중은행 지분의 절반을 소유하며 금융기관을 장악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병철은 호남비료 주식 45%, 한국타이어 주식 50%, 삼척시멘트 주식 70% 등 여러 기업의 주식들도 구매했습니다.

그러던 1960년 4월 19일, 학생들과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통한 독재를 타도하는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 4.19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1960년 4월 26일,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하야했습니다.

이후 1961년 5월 16일, 당시 육군 소장 박정희의 주도로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1961년 5월 29일, 경제인 11명이 부정축재혐의로 구속되는데, 그 명단의 가장 첫 번째가 바로 병철이었습니다. 결국 병철을 포함한 27개 기업의 소유주들에게 378억 8백만 환이라는 추징금이 징수되었고, 그중 삼성은 103억 4백만 환으로 전체의 27%를 차지했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환’이라는 화폐단위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원’의 10분의 1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병철은 부정축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박정희를 만나게 됩니다.

‘지금의 세법은 전시상태 세법 그대로 적용되고 있어서 1,000환을 벌면 1,200 환을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세율 그대로 납부했다면 기업 운영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억울함을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병철은 당장에 벌금을 내는 대신 기업가들에게 투자를 하여 국가에 도움이 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결국 병철의 요청은 투자명령이라는 법령으로 시행됩니다.

한편 1946년, 일본에서는 2차세계대전으로 무너진 경제를 다시 재건하겠다는 목적으로 민간 경제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게이단렌이라는 경제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병철은 이를 벤치마킹하여 1961년 8월 16일, 한국경제인협회라는 경제 단체를 설립하고 이곳의 초대 회장이 됩니다.

이곳이 바로 현재의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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