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료의 설립과 사카린밀수사건 그리고 이병철의 은퇴 [삼성 #10]


대지주의 아들로 자라 직접 대지주가 되기도 했던 병철은 농업 생산성을 더 높이기 위해 비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비료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비료공장을 지으려는 계획은 가지고 있었지만,


4.19 혁명과 5.16 쿠데타 등 정치적인 혼란을 겪으며 추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63년 10월 15일,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으로 박정희가 당선되었습니다.

이후 박 대통령은 병철에게 정부가 적극 지원할 테니 비료 공장을 지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렇게 1964년 8월, 병철은 한국비료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울산에 대규모 비료 공장 건설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는 1년에 18만톤을 생산하는 당시 세계 최대 비료공장이 있었고 소련에는 1년에 30만 톤을 생산하는 비료공장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철은 그보다 더 큰 비료 공장을 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조율한 끝에 연 33만 톤을 생산하는 한국비료의 공장이 착공됐습니다. 그렇게 공장 건설이 80% 정도 진행될 무렵이었습니다.

1966년 9월 15일, 경향신문을 통해 한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일명 사카린 밀수 사건!


사건의 발생은 4개월 전인 1966년 5월 24일, 한국비료 공장의 건설을 위해 일본 미쓰이 물산으로부터 건설자재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비료의 원료인 사카린 55t 정도와 양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등을 대량 밀수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이것들을 되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한, 일 양국 정치인들이 나눠 가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직접 대검에 사카린 밀수 사건에 대한 전면 수사를 지시하며 삼성과의 선긋기에 나섰고, 당시 한국 비료 상무였던 병철의 둘째 아들 창희는 구속되었습니다.

결국 1966년 9월 22일, 병철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비료의 자기 지분 51%를 국가에 기부하며 재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참고로 이 사건 때문에 당시 국회의원이던 김두한은 국회 대정부 질의 도중 “똥이나 처먹어 새끼들아!”라고 외치며 똥물을 뿌린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훗날 병철의 첫째 아들 맹희는 회고록을 통해 사카린 밀수 사건은 자신이 직접 현장 지휘했으며 박정희 정부와 삼성이 공모한 조직적인 밀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한국비료를 국가에 기부한 지 30년 가까이 지난 1994년이 돼서야 다시 삼성이 인수하여 삼성정밀화학으로 사명을 바꿨습니다.

이후 2015년, 롯데케미칼에 매각하며 지금의 롯데 정밀화학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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