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4월 30일, 이건희와 홍라희는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14개월 정도 지난 1968년 6월 23일, 이들 사이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납니다. 이 아이가 바로 이재용, 지금의 삼성전자 부회장이 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가 유년기에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사진도 거의 없지만, 동양방송 이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방송국에 가서 찍힌 사진에서 그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재용은 서울 3대 사립초등학교라 불리는 경기초등학교와 많은 대기업 자재들이 거쳐간 청운중학교와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재용과 함께 학교생활을 했던 친구들은 재용이 삼성가라는 티를 내지 않는 모범생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게다가 재용은 성적도 꽤 좋은 편이었고, 중, 고등학교 때는 반장을 맡기도 했으며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생활기록부에 ‘명랑, 쾌활하며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이라고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1987년, 재용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왜 동양사학과에 들어갔냐에 관해서는 여러 추측이 있는데, 뭐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어쨌든 대학생활 중에도 그는 조용히 학업에만 열중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재용은 승마에 입문했었는데, 1989년에 제2회 아시아 승마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그 정도로 운동 신경이 뛰어난 재용은 1990년 6월에 받은 징병검사에서 1급 현역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1991년 11월에 재검사를 받더니 허리 디스크로 인해 5급 판정을 받으며 면제를 받게 됩니다.

재용은 승마 국가대표 선수를 하면서 말에서 자주 떨어져서 허리를 다쳤다고 했는데, 91년 당시, CT 장비가 없던 산부인과 전문병원인 안세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진단서를 떼서 제출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안세병원은 1999년에 척추 전문 병원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어쨌든 재용은 1992년에 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한편 졸업 직전인 1991년 12월, 재용은 삼성전자 공채 32기로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신입사원으로 회사 생활을 하기도 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 때문에 재용이 공채로 입사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총무그룹 부장으로 입사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암튼 그렇게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지내며 1995년, ‘일본 제조업 산업공동화에 대한 고찰’이란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8년, 미국 유학 시절에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 임세령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2009년 협의이혼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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