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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왕자의 난 [삼성 #13]

by 세상의모든지식 2022.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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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과 박두을 사이에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 이맹희, 둘째 아들 이창희, 그리고 셋째 아들 이건희 그중 맹희와 창희는 아버지를 도와 삼성 계열사의 경영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카린 밀수 사건의 결과로 병철은 은퇴를 선언하고 첫째 아들 맹희에게 삼성 계열사 일부의 경영을 맡겼습니다. 

사실, 병철은 삼성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당연히 맏이인 맹희에게 물려줄 생각으로 가까이 두고 10년 정도 후계자 수업을 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맹희가 경영을 맡은 지 6개월도 안 돼서 맡은 기업체뿐 아니라 삼성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평소 ‘실패한 경영인은 범죄자’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병철은 삼성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수많은 직원들을 생각하며 맹희는 삼성그룹을 경영하기에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편, 둘째 아들 창희는 당시 한국 비료의 상무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비료에서 사카린 밀수 사건이 발생하고 창희는 그 책임을 지고 구속되어 징역 5년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리고 6개월간 복역한 뒤, 병보석으로 풀려나게 되었고 이후 제일모직과 제일제당의 부사장직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뿐 아버지인 병철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1969년, 병철은 삼성전자의 설립과 함께 다시 경영 일선으로 복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 둘째 아들 창희는 아버지의 복귀가 못마땅했는지 사카린 밀수와 탈세, 외화 밀반출 등 삼성의 조직적인 경제 범죄에 아버지 병철이 직접 개입되었다는 내용의 투서를 쓰게 됩니다.

이 투서는 당시 육군 중령이던 전두환이 청와대 경호실장 박종규에게 전달하여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아버지만 없으면 자신이 삼성을 물려받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삼성그룹 ‘왕자의 난’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투서를 받은 박 대통령은 “자식이 아버지를 모함하고 고발한다는 것은 천륜에 어긋나는 일이야. 이 사건, 묵살해!”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결국 청와대 투서 사건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버렸습니다.

사건 이후, 계획에 실패한 창희는 삼성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떠나게 되며 왕자의 난은 끝이 납니다.

그런데, 병철은 이 사건에 첫째 아들 맹희 또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투서를 전달하는 과정에 있던 전두환과 맹희가 친한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 사건을 계기로 맹희와 창희는 모두 후계자에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71년, 병철은 미리 유언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장남 맹희는 경영에 뜻이 없고, 차남 창희는 많은 기업을 하기 싫어한다.

3남 건희는 처음에 사양하다가 맡아보겠다는 뜻을 가졌다.

삼성그룹의 후계자는 건희로 정한 만큼 건희를 중심으로 삼성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기록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병철이 죽은 뒤, 유언장은 없으며 자녀 5명 앞에서 구두로만 유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며 상속과 관련한 법정 공방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이후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한편, 둘째 아들 창희는 삼성그룹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간 뒤, 개인사업을 시작하며 비디오테이프, 오디오 테이프 사업 등을 하던  새한미디어를 설립했습니다.

그러다 1977년,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와서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1991년, 창희는 혈액암에 걸려 일찍이 세상을 떠나며 불운의 황태자라 불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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