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딸을 잃고 몇 년 후, 초선 상원의원이었던 바이든은 영어 교사였던 지금의 아내 질 바이든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질은 바이든의 청혼을 무려 5번이나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공인이 되고 싶지 않았던 데다 바이든이 이미 이혼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엄마를 잃은 바이든의 아이들이 또다시 엄마를 잃지 않으려면 바이든과의 결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1977년, 뉴욕의 유엔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새 가정을 이룬 바이든은 이후 승승장구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져가게 됩니다. 그리고 1988년, 바이든은 40대 젊은 대통령을 꿈꾸며 드디어 대선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영국 노동당 닐 키녹의 연설과 로스쿨을 다닐 때 논문을 표절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자 결국 경선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경선을 포기한 이후 갑자기 쓰러지게 된 바이든.. 알고 보니 뇌동맥 질환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뇌동맥이 파열돼 두 차례나 큰 수술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생사의 고비까지 넘나든 바이든은 다행히 7개월 만에 재활에 성공하여 무사히 정계에 복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2008년 다시 한번 대선 출마에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오바마와 힐러리의 대세론에 밀려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일찌감치 경선 중단을 선언하게 됩니다.
이후 중도성향의 백인 표가 필요했던 오바마는 바이든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게 되고, 바이든 역시 이를 수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2015년, 선거철이 다가오자 이번에도 여기저기서 바이든이 다시 한번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바이든은 이번엔 아예 불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바로 그해, 그의 장남 보 바이든이 47세의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사망한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여러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는 둘째 아들과 달리 큰 아들 보는 바이든이 ‘나의 영혼’이라고 부를 만큼 학벌이나 배경, 인품, 경력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모범적인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까지... 그의 잇따른 비극은 오히려 미국 국민들의 동정심을 자극하고, 바이든을 공감 능력이 있는 정치인으로 만드는 새옹지마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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