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바이든은 델라웨어대학교에 진학해 역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게 되는데 바로 그 해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식을 보고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엔 시라큐스 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1학년 때 다른 사람의 논문을 인용하지 않고 그대로 베껴 쓰는 바람에 F학점을 받게 되는 일까지 일어나는데,
이 사건은 훗날 바이든의 첫 대선 출마에서 그의 발목을 잡는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대학생이던 당시는 아직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로 바이든 역시 입대해서 베트남전에 참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학업을 핑계로 5차례에 걸쳐 입영을 연기한 끝에 결국 25살이 되던 해에 건강상의 이유로 병역에서 면제되어 베트남전에 참전하지 않게 됐다고 합니다.
이 사건 역시 이후 병역기피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오르며 비난을 받았습니다.
한편, 대학생이던 21살의 바이든은 친구들과 바하마로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네일리아 헌터, 그의 첫 아내와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1966년,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2남 1녀 세 명의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 되었습니다.
1968년, 어느 덧 로스쿨을 졸업할 나이가 된 바이든… 하지만 85명 중 겨우 76등일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교수들로부터 신임을 많이 받은 덕분인지 추천을 받아 델라웨어 주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한 곳으로 취업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바이든은 늘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의 편에 서서 일을 하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고 곧 로펌을 나와 국선 변호사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국선 변호사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결국 다시 지역 로펌에 재취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 시기, 바이든은 민주당과 관련된 한 포럼에 참여했다가 델라웨어 뉴캐슬 의회 의원, 그러니까 우리로 따지면 군의원에 출마해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됩니다.
1970년 당시 이 지역은 공화당의 강세 지역으로 민주당에서는 아무도 후보로 나서려고 하는 이들이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바이든은 떨어지는 셈 치고 선거에 나가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바이든은 유력한 공화당 후보를 이기고 당선이 되는 이변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후 1972년, 바이든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번엔 델라웨어 주 상원의원으로 출마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한번 기적을 일으키게 되니, 겨우 스물아홉의 정치 신인이 공화당의 거물, 3선 현역 의원을 단 1% 차이로 극적인 대 역전극을 만들며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으로 당선이 된 것입니다.
이후 바이든은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36년간 델라웨어 주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임한 상원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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