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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번의 거절 [KFC #5]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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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번의 거절 [KFC #5]

전쟁이 끝난 뒤, 샌더스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947년, 아내 조세핀과 이혼했으며, 2년 뒤인 1949년, 샌더스는 오랫동안 자신의 비서로 있었던 클라우디아 레딩턴과 재혼하게 됩니다. 

같은 해, 켄터키 주지사였던 로렌스 웨더비(Lawrence Weatherby)로 부터 다시 한번 코넬이란 명예 대령 호칭을 수여받게 되는데 샌더스는 이때부터 자신을 코넬 샌더스라고 소개하기 시작했고 켄터키 코넬로서 켄터키 스타일의 넥타이가 달린 검은 버크 양복을 입고 자신의 스타일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은퇴 이후의 삶을 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샌더스가 오랫동안 운영해 왔던 주유소 사업은

프랜차이즈의 형태로 운영 중이던 사업체였기 때문에 샌더스는 자연스럽게 프랜차이즈의 개념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이 개발한 치킨 요리를 프랜차이즈화 한다면 노년에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포드 자동차 트렁크에 맞춤형 보일러, 향신료, 밀가루, 기름 닭고기를 담은 아이스 박스를 싣고 아내 클라우디아와 함께 켄터키 지역을 여행하며 레시피를 팔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식당을 돌아다니며 직접 치킨 요리를 만들어 주면서 레시피 제휴 계약을 제안했지만, 그 당시는 압력 프라이기가 너무 위험해 보였고 유지 보수도 많이 필요해 보였기 때문에 번번히 거절당했습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가 조금 더 과장되면서 1008번 거절당했다는 얘기가 나온 듯 합니다.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1979년, 샌더스의 둘째부인 클라우디아가 TNB(Trinity National Broadcasting)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저도 할랜드의 치킨 요리가 첫 계약 하기까지

1009번 걸렸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어요.

제가 그 말도 안되는 루머를 끝내겠어요. 

1009번은 아니에요. 하지만 600~790번 사이 정도는 될 거예요.” 

어쨋든 이렇게 프랜차이즈 계약을 위해 켄터키를 넘어 미국 곳곳을 여행하던 샌더스는 1951년이 되자 잠시 여행을 멈추게 됩니다.

8월에 있을 켄터키 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 였는데, 프랜차이즈 사업이 잘 안 될수도 있었기 때문에 노후를 위해서는 의원이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근소한 차이로 낙선하게 되면서 샌더스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더더욱 포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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