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업 익스프레스 사업 초기 투자자 [아멕스 #1]
1803년,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미시시피 강 서쪽 루이지애나 지역을 매입했고 1819년에는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 지역을 사들였습니다.
그렇게 영토를 점차 넓혀가면서 사람뿐 아니라 짐이나 우편물을 운반할 일도 많아지게 됩니다.
이때, 세계 최초로 ‘익스프레스(급행편)’라는 상표를 사용하여 사업을 시작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윌리엄 핸든 그는 뉴욕의 최고 중심가 월스트리트에 사무실을 얻어 ‘핸든스 패키지 익스프레스’라는 간판을 걸고 철도를 이용하여 화물운반사업을 해 나갔습니다.
핸든은 운송비용을 낮추기 위해서 철도회사와 장기계약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또 한편으로는 안정적으로 사업을 해나가기 위해서 좀 더 높은 요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독점계약을 요구했습니다.
이 전략은 아주 성공적이었고 핸든의 사업은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 바다나 강을 통한 서비스망을 구축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의 5대 호수 중 하나인 이리호에서 허드슨 강 상류를 이어주는 이리 운하, 그 곳을 오가며 성공적으로 선박 운송업을 하던 헨리 웰스란 사람을 만나 함께 일하게 됩니다.
사업 수완이 좋았던 웰스 덕분에 핸든은 육로와 수로를 넘나들며 운송 사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선박운송업을 하며 이리 운하를 오가던 웰스는 미국 중서부의 개발과 발전을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에 앞으로 더 발전할거란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행편 사업을 올버니에서 버펄로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핸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1841년, 웰스는 혼자서라도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핸든과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이후 크로우포드 리빙스턴과 조지 포메로이의 투자를 받아 리빙스턴&컴퍼니를 설립하게 됩니다.
올버니에서 버펄로, 두 도시 사이에서 운송업을 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이었고 올버니와 버펄로 사이에 아직 철도가 놓이지 않았으며 배는 너무 느려서 ‘익스프레스’, 급행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헨리 웰스는 그중 가장 빠른 운송수단인 역마차를 이용하기로 결정하고 직접 배달원이 되어 화물을 운송했습니다.
그러던 1843년, 웰스에게 천금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올버니와 버펄로 사이에 철도가 개통된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웰스의 회사는 급성장했고 어느새 혼자서 사업을 운영하기에 벅찬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 시기 웰스의 눈에 들어온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당시 운송회사의 화물 대리점을 운영하던 ‘윌리엄 조지 파고(William George Fargo)’.
훗날, 헨리 웰스와 함께 미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웰스 파고 & 컴퍼니를 설립한 인물입니다.
그의 젊음과 넘치는 의욕을 높이 평가한 웰스는 파고를 배달원으로 스카웃하는데 성공했고 1년 만에 파고는 버펄로 대리점의 운영을 혼자서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1845년 1월 14일, 핸든스 패키지 익스프래스의 사장, 윌리엄 핸든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핸든이 운영하던 올버니와 뉴욕 간의 운송사업까지 웰스가 인수했습니다.
1848년, 회사 초기투자자인 크로우포드 리빙스턴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 웰스는 뉴욕 서부의 급행편 사업을 리빙스턴의 동생과 파고에게 팔아버리면서 리빙스턴&컴퍼니는 웰스&컴퍼니와 리빙스턴 파고&컴퍼니로 나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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