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포라이터 2차세계대전 월남전 군사용 수집품 [지포라이터 #4]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 기지를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전시체제로 전환되면서 지포 매뉴팩처링 컴퍼니는 일반인용 제품의 제조를 중단하고 군사용 지포라이터의 생산만 하게 됩니다.
전쟁으로 인해 재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황동 대신 등급 낮은 강철로 만들어야 했으며 크롬이나 니켈 도금도 할 수 없어서
검은색 페인트로 칠한 뒤 열처리를 하여 표면에 균열감이 생기도록 마감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번쩍번쩍하는 지포 라이터의 빛깔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대신 빛이 반사되어 적에게 노출되는 일이 없어져 오히려 전쟁용으로는 제격이었습니다.
조지는 군인들이 값싸게 지포 라이터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나에 1달러라는 아주 낮은 가격을 측정했습니다. 이로써 지포라이터는 ‘가장 저렴한 라이터’란 타이틀을 획득하게 됩니다.
조지는 군인뿐 아니라 당시 전쟁 특파원으로 나가있던 어니 파일에게 지포 라이터를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니 파일은 조지에게 Mr. Zippo라는 별명을 지어줬다고 합니다.
어쨌든 지포 라이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물에 빠지든 진흙이 잔뜩 묻든 상관없이 2차 세계대전 동안 군인들에게 불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군용품으로만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45년에는 생산량이 300만 개에 이르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조지는 다시 일반인용 지포라이터의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홍보할 방법을 찾던 중 자동차를 활용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1947년, 크라이슬러 뉴요커 모델을 수작업으로 개조한 일명 지포카를 만들었습니다. 지포라이터와 같이 뚜껑을 열고 닫을 수 있으며, 네온 라이트가 있어 라이터에 불이 붙은 것을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지포카는 2년 동안 미국 전 지역을 순회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미국이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지포라이터는 또다시 전쟁에 사용되었습니다. 군인들은 지포라이터를 더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불을 만드는 라이터의 기본 기능 외에 번뜩이는 몸통은 거울로 사용했고,
비상시 염분 보충을 위해 지포라이터 바닥 구멍 부분에 소금을 보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많은 군인들은 전쟁 중 자신의 심정을 라이터에 그려 기록하기도 했는데, 전쟁의 의미가 담긴 이 지포 라이터들은 전쟁이 끝난 뒤 수집가들이 아주 좋아하는 수집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기적적인 사건도 일어납니다. 1965년 무렵, 월남전에 참전 중이던 미군 안드레즈 마르티네스 상사는 왼쪽 가슴에 총탄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왼쪽 가슴 쪽 주머니에 넣어둔 지포라이터가 총탄을 막은 덕분에 다행히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던 겁니다. 게다가 이 라이터는 여전히 불이 켜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은 미국의 시사 매거진 LIFE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지포 매뉴팩처링 컴퍼니 역시 이를 광고에 적극 활용했고덕분에 지포라이터는 전 세계 라이터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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