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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홍보를 위해 경주에 나갔다가 우승을 한 헨리 [포드 #4]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2.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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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홍보를 위해 경주에 나갔다가 우승을 한 헨리 [포드 #4]

투자자를 모아서 회사를 세운 헨리

1899년, 헨리는 그에게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을 모아서 디트로이트 오토모바일 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자동차 생산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첫 번째 자동차 쿼드리사이클을 모델로 한 비슷한 자동차들을 생산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인식이 바뀌어가는 과정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는 ‘말 없는 마차가 가능해?’라는 시선에서 ‘오호 가능하긴 하구나!’라는 인식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편리성vs스피드

헨리는 자동차가 인간의 편리성에 중점을 두고 더 나은 성능으로 대중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어느 차가 가장 빠른가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상용화 전에 경주가 먼저 생겨버림

그렇게 자동차의 상용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자동차 경주가 먼저 생겨나버렸습니다. 

더 빠른 자동차를 만드는데 집중된 시장

자본주의 시장의 원리에 따라  당연히 자본은 더 빠른 자동차를 만드는데 집중되었습니다.

투자자들, 아니 투기자들은 더욱 빠른 자동차를 만들기 바랐고 자동차 주문 제작을 받아서 비싼 가격에 팔아 이윤을 남겨 먹고 있었습니다.

대중을 위한 투자는 지원받지 못한 헨리

헨리는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지만, 3년 동안 자동차를 만들면서도 그런 방향으로는 전혀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빠른 자동차만 기억하는 사람들

한편, 사람들은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한 즉, 가장 빠른 자동차 외에는 몽땅 무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암튼 헨리는 우선 사람들이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가장 빠른 자동차를 만들어 자신이 직접 경주에서 우승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윈튼의 'Bullet' 자동차

당시 미국 자동차 경주 챔피언은 알렉산더 윈튼이라는 기계공이었는데, ‘Bullet’이란 이름의 자동차를 몰며 실력을 인정받은 덕분에 그의 자동차 회사 또한 제법 잘 나갔습니다.

압축 엔진을 만들어 더 빨라진 헨리의 자동차

자동차에 관한 모든 원리를 이해하고 있던 헨리는 과거 자신이 만들어왔던 자동차 엔진보다 더욱 압축된 방식의 엔진을 제작하여 자신의 자동차에 장착했습니다. 실험 결과, 이전보다 빠른 속도인 시속 115km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시속 115km를 달리는 건 기본이지만, 당시엔 어마어마한 속도였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윈튼에게 도전장을 내민 헨리

그렇게 자신감을 얻은 헨리는 알렉산더 윈튼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미시간 주 그로스포인트 경마장

1901년 10월 10일, 미시간 주의 그로스 포인트 경마장에서 챔피언 알렉산더 윈튼 대 도전자 헨리 포드의 자동차 경주가 열렸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자 배테랑 레이서였던 윈튼은 250m 정도의 격차를 만들며 크게 앞서갔습니다.

‘역시 챔피언은 챔피언이야’라고 생각한 순간 점차 헨리가 운전에 안정감을 찾으며 윈튼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기계 결함이 생긴 윈튼의 차

그런데, 헨리의 추격 때문에 무리를 했는지 윈튼의 자동차에 기계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 틈을 타 헨리는 윈튼을 따라잡고 경주에서 승리했습니다. 챔피언 윈튼을 이긴 헨리!

자동차 경주는 엄청난 광고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헨리의 자동차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려고 줄을 섰습니다.

투자자를 받게 되면 일어날 일을 생각한 헨리

하지만 헨리의 경험상 누군가에게 투자를 받게 되면 투자자들은 투자에 대한 수익을 높이라며 압박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돈 되는 분야에만 집중하게 되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좋은 자동차 만들기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렇게 1902년 3월, 헨리는 오토모바일 컴퍼니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습니다.

참고로 오토모바일 컴퍼니는 이후 헨리 릴랜드라는 기계공에 의해 인수되는데,

이곳이 바로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인 캐딜락입니다.

작업실에서 실험중인 헨리

자신의 첫 번째 자동차 회사를 그만둔 헨리는 작은 작업실 하나를 얻어 자동차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 자동차 경주에 계속 출전한 헨리

그는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자동차 경주도 계속해서 출전했습니다.

경주용 자동차 999

1903년, 헨리는 오직 스피드만을 위한 경주용 자동차, ‘999’을 만들게 됩니다. 그는 이 자동차에 아주 큰 실린더 4개가 달린 엔진을 설치했는데, 무려 시속 128km 정도의 속도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999’의 첫 경주의 결과!

무려 800미터의 격차로 1등을 차지했습니다. 

어느새 헨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으로 유명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이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니 투자를 조금 받더라도 원하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1903년 6월, 자신의 지분 25.5%를 포함한 자본금 10만 달러를 가지고 포드 모터 컴퍼니(Ford Motor Company)를 설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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